며칠 전 스레드에서 교수의 역할에 대한 글을 보았다.
내용은 이랬다.
"많은 사람들이 교수는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이야기하지만, 결국 교수도 대학이라는 조직에 소속된 월급쟁이일 뿐이다. 그렇다면 교수의 역할은 어디까지인가?"
글을 읽고 한참 멍하니 있었다.
맞는 말인데…
왜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을까.
나는 늘 그렇게 생각했었다.
교수는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사명이 주어지는 자리라고.
학생들의 미래에 영향을 미치고,
좋은 교육을 제공하는 책임이 있으며,
끊임없이 성장해야 한다고.
그게 맞다고,
그래야 한다고 믿었고
그래서 더 열심히 했고
더 힘들었다.
그리고 그게,
내가 학계를 떠나게 된 진짜 이유였던 것 같다.
처음부터 이 일이 내 ‘사명’이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수업 하나, 이메일 하나, 평가 하나에
내 존재가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좋은 피드백이 오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고,
부정적인 말 한 줄에 밤잠을 설쳤다.
‘내가 부족해서 그런가?’
‘내가 더 잘했어야 했나?’
‘학생들을 실망시킨 건 아닐까?’
어느 순간부터 나는
"교수"라는 타이틀을
직업이 아니라 정체성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명감이
나를 살린 동시에
나를 무너뜨리고 있었다.
"You care too much."
예전에 내 동료에게 했던 말인데,
지금 돌아보면 그 말은
사실 나 자신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었다.
조금만 덜 신경 썼더라면.
조금만 덜 감정을 쏟았더라면.
조금만 더 나와 직업을 분리했더라면.
나는 더 오래,
덜 지치면서
이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지금 나는 인더스트리에서 UX 리서처로 일하고 있다.
좋아하는 일이고, 의미 있는 일이지만
그게 나의 전부는 아니다.
일과 나 사이에 거리를 둔다.
회사가 잘 안 되어도,
상대가 나를 좋게 보지 않아도
그게 내 존재 자체를 부정하진 않는다.
지금은 안다.
사명감이 꼭 나쁜 건 아니지만
모든 걸 걸 필요는 없다는 걸.
스스로를 태워가며 증명할 필요는 없다는 걸.
교수의 역할에는 어느 정도의 기본선이 있다.
그 이상은 개인의 선택이다.
그 선택을 무조건 헌신과 희생의 방향으로만 끌고 가지 않아도 된다.
그건 누구도 우리에게 강요할 수 없는 것이니까.
무엇보다,
우리가 건강하게 오래 가기 위해서
스스로를 너무 몰아붙이지 않아야 한다는 걸
나는 지금에서야 깨닫고 있다.
나도 누군가에게 말해주고 싶다.
너무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학생은 고객이고, 교수는 서비스 제공자라는 냉정한 구조 속에서
혼자 사명감 불태우며 무너지지 않길 바란다고.
그저,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잘 살아내는 것,
그게 진짜 교육자의 사명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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